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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랩의 탄생] 빼기의 문화

2021-10-28

퓨처랩은 미래 세대를 위한 창의환경 조성과 청년 창작자 생태계 활성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아이들의 창의성(Originality)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데요. 오드리의 기획연재 <퓨처랩의 탄생>은 우리가 어떤 고민과 과정을 통해 창의환경의 3가지 핵심 요소인 공간, 콘텐츠(학습), 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소개합니다. 오늘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의 방식으로,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온 퓨처랩의 새로운 문화를 전합니다. 

 

청소년은 자기의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 갈 권리를 가진다. 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 청소년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정의로운 공동체의 성원으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간다. 가정 · 학교 · 사회 그리고 국가는 위의 정신에 따라 청소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청소년 스스로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한다.” -청소년 헌장 中 (1990.5.12 선포) -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 혹은 시선은 어떤가요? 일반적으로 청소년은 주로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거나, 미래의 주역으로 추앙받으며 그들의 현재의 삶을 희생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소년 헌장>이 선포한 바와 같이,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며, 인격체로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 우리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퓨처랩은 창의성이 발현되는 환경 조성을 위해 물리적 환경과 혁신적인 콘텐츠를 연구/개발하는 것은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이 고유한 인격체로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주권과 자발성이 회복되는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의 방식으로,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퓨처랩. 우리에게 없는 세 가지를 공유합니다. 


청소년들과 함께 만드는 퓨처랩의 문화

No Orientation: 의도된 불친절 

퓨처랩 론칭을 위한 첫 번째 파일럿 연구. 우리는 워크숍에 참가한 청소년들에게 어떠한 사전 공지나 안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청소년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기획한 의도된 불친절, 오리엔테이션 없는 첫 시작을 실험으로 설계한 것이지요.


프로젝트 시작 시간을 앞두고 하나둘, 참가자들이 퓨처랩 안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함께할 선생님(?)은 누구인지, 기본적인 상황도 안내받지 못한 아이들은 뻘쭘한 발걸음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때 가장 초조한 사람은 사실 청소년들이 아니라, 운영진입니다.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 가겠다고 하면 어쩌지?”, “우리의 (의도된) 불친절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마음을 닫으면 어쩌지?”.  태연한 얼굴을 연기하고 있지만, 손발이 차가워지도록 초조했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본인과 똑같이 어색한 몸동작과 초조한 동공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퓨처랩 이곳저곳에 있는 관계자로 보이는 어른들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말을 붙이기 시작했죠.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본인이 있어야 할 곳(내 자리)을 찾았고, 워크숍을 함께할 작업자(No! 선생님)와 친구들과 같이 자리했습니다. 


청소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이 스스로 이 공간을 정의하고 쓰임을 살펴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을 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공간을 탐색하고 주도적으로 주변인들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통해 익숙한 방식을 벗어나 퓨처랩의 새로운 문화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는 것이지요. 


의도된 불친절에 따라 스스로 관계맺기를 시작한 아이들

No Teacher: 상호학습 

개인적으로 아주 존경하는 놀이 기획자가 있습니다. 결과적인 모습은 같은 놀이로 보이지만 그가 설계한 놀이판은 왠지 모르게 더 재미있고,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역동과 에너지도 굉장합니다. 무엇이 그의 놀이를 다르게 만드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하루는, 머리가 하얗게 센, 모든 것을 다 꿰뚫는 것 같은 깊은 눈빛과 인자한 얼굴의 놀이 기획자(a.k.a 고무신)가 아이들과 치열하게 다투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이의 승패를 가리는 진지한 다툼, 져주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이들과 ‘놀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놀이’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함께 놀며 만나는 갈등에, 놀이의 동등한 플레이어(player)로서 치열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그의 놀이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교사와 학생의 구분 없이 서로 배우는 문화

 

퓨처랩은 기존 교육이 가진 프레임에서 벗어나, 교사와 학생의 개념을 한정하지 않고 동등한 작업자로 참여,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교사 격으로 초대되는 전문 작업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의 일 순위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배우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퓨처랩의 작업자들에게는 청소년 헌장에 명시된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며,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가 문자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살아있는 메시지입니다.

No Parent: 퓨처랩 문화의 일상화  

퓨처랩의 대표적인 청소년 창의 프로그램 를 진행할 때,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설명회’라는 이름으로 부모님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습니다. 프로그램을 준비한 우리의 의도와 바람, 각 워크숍을 이끄는 작업자/작가의 생각과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부모님들께 ‘협업’을 요청하는 자리입니다. 대다수의 부모님이 퓨처랩의 지향과 철학에 매우 공감하지만, 일상에서도 이러한 지향과 철학을 적용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퓨처랩을 방문하는 시간 외에도, 아이들을 고유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퓨처랩의 문화가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함께해 주기를 부탁하고, 오늘 바로 실천할 한 가지를 요청합니다. “아이들에게 오늘 뭐 배웠니? 라고 절.대.로! 물어보지 마세요.”


퓨처랩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유로운 활동과 도전을 통해 스스로 본인의 동기를 찾아내고, 그 자발적 동기를 외화 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정해진 커리큘럼과 타인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향유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인 부모님의 지시나 독려, 혹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에너지를 만들어 냈던 방식에서 벗어나 보는 연습을 부모님들과 함께하고자 퓨처랩을 “No Parent Zone”으로 선언(!)한 것이죠. 


문화를 만들 때 부모님의 역할도 중요!

 

같은 이유로 프로그램이 끝날 때 전시회나 발표회와 같이 성과를 보여주기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작업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퓨처랩의 주인이 되어, 실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과정에 집중하며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문화를 경험하며 눈부시게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 환경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욱 효율적인 보급과 대중화를 위한 개량화도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쁘고 수고스러운 것들이 신속하게 개선되어 아주 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이것이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앗아간 것도 사실입니다.  


퓨처랩에는 위의 세 가지 외에도 없는 것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할 수고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고자 의도적으로 버린 것들이지요. 교사가, 부모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자동화된 복사-붙여넣기(copy & paste) 시스템으로 전해주는 것 대신, 아이들 스스로 배움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저희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에필로그 


한 친구가 퓨처랩에 있는 수레를 타고 놀다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몇 바늘 꿰매기까지 했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큰 사고였습니다. 게다가 그 일로 인해 퓨처랩 이곳저곳에 안전규칙을 써 붙이고, 여러 금지조항을 만들라는 압박(!)까지 받았으니, 퓨처랩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운영진들이 규칙 몇 가지를 만들어 공지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사실 별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무서운 일’입니다. 퓨처랩의 주인은 어린이와 청소년인데, 조금씩 어른들의 일방적인 입김이 미치다 보면 이곳도 청소년들이 설 곳을 잃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죠. 


토론을 위해 둘러 앉은 아이들

우리의 주권을 평화적 방법으로 지키기 위해, 직접 민주주의의 모습으로 40명의 아이가 퓨처랩에 둘러앉았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문화를 만드는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가장 익숙한 방식인 벌하고, 금지하는 규칙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열띤 논의가 이어지던 중에 한 친구가 이야기가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고,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 말라는 규칙을 계속 만들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퓨처랩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어때?”


하마터면, “퓨처랩에서 뛰면 벌금 천원!”과 같은 수많은 징벌 제도를 도입할 뻔했는데… 아이들의 성장을 언제나 기대를 뛰어넘습니다. 퓨처랩이 위기(?)의 순간을 맞을 때마다, 아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론 시작은 징벌제도였지만, 언제나 기적적인 마무리로 아이들은 퓨처랩의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킵니다.

 

글 | 오드리 (퓨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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