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News

Story

[퓨처랩의 탄생] 미지의 세계로의 초대

2021-10-02

퓨처랩은 미래 세대를 위한 창의환경 조성과 청년 창작자 생태계 활성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아이들의 창의성(Originality)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데요. 오드리의 기획연재 <퓨처랩의 탄생>은 우리가 어떤 고민과 과정을 통해 창의환경의 3가지 핵심 요소인 공간, 콘텐츠(학습), 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소개합니다. 오늘은 콘텐츠(학습)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창의적 배움의 설계 방식을 전합니다.  

퓨처랩은 예술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기획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초대합니다. 언뜻 보면 아이들에게  문화를 향유하고 감수성을 키우는 영재 교육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설계하는 배움의 근본적인 목적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퓨처랩은 아이들이 예술가들을 만나 예술의 기법을 배우거나 감상적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Not Knowing)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하는 예술가들의 성장 방식을 익히기를 바랍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예술가처럼 사유하기 

이러한 배움은 전통적, 이성적, 인과관계의 법칙에 따른 논리적 방식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진정한 만족이나 자기 고양과 같은 예술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미래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 역량으로 꼽히는 창의성과 창조성은 새로운 발상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논리적 사유보다 우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 것보다(암기), 알지 못하는(Not Knowing) 세계로의 탐험이 필요하죠. 

퓨처랩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예술가처럼 사유하는 배움을 설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소개합니다. 


자기만족과 고양을 느끼는 예술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창의적 배움

폐기학습(Unlearning): 기존의 배움을 버리기

퓨처랩의 배움은 기존 지식에 의구심을 갖고, 과거의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폐기)부터 시작합니다. 폐기학습(Unlearning)은 예술가의 사고방식과 닮았습니다. 예술가의 생명력은 끊임없는 상상과 실험적 시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기존 문법의 답습으로 만들어진 관성이나 학습된 사고의 틀을 과감하게 폐기할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적/정서적 틈이 생깁니다.

많은 성인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저는 그림 잘 못 그려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유년기부터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타인의 평가에 따라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을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고 단정하죠. 이런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그림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할 기회를 영영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퓨처랩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사회와 부모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여받은 태도와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자신의 삶을 고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담은 작품

몇 해 전 블록형 코딩 언어인 스크래치(Scratch)를 활용하여 인류의 놀이 문화를 살펴보고 나만의 게임을 개발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도 코딩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부터 스크래치의 모든 기능을 통달한 아이까지 다양한 수준의 10명의 초등학생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저 스크래치 다 알아요! 학원에서 자격증도 땄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한 아이는 워크숍이 진행될수록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실 예상했던 일입니다. 우리는 워크숍을 코딩의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와 놀이에 대한 나만의 시선을 갖고, 오롯이 나만의 상상을 표현(구현)해 보도록 설계했습니다. 아이는 변수, 함수, 조건문 등을 짤 수 있는 코딩 기술은 모두 습득했지만, 스스로 상상하고, 만들고 싶은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기술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지 몰랐던 것이죠. 다행히도 아이들은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갖고 있습니다. 당혹감을 느끼던 아이는 4주 만에 기존의 방식을 잊고(Unlearning), 새로운 학습 방식을 익혔습니다. 


코딩도 나를 표현하는 창작 도구 중 하나

상황학습(Situated Learning): 구체적 맥락 속에서 배우기  

“교육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전통적으로 교육은 학습자가 배워야 하는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하고, 이를 마스터한 교수자가 학습자에게 진리 그대로 전수하는 것을 목표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한 시대의 사람들에게 절대 진리로 수용되던 지식도 변화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구는 평평하다!’가 ‘지구는 둥글다!’로 변한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 밝혀진 사실과 정답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앎은, 시대와 상황이 변화하더라도 유연한 적용이 가능합니다.

아이들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퓨처랩이 위치한 스마일게이트캠퍼스 빌딩 곳곳에는 자동문들이 있습니다. 자동문을 통과하려면 스태프에게 사원증을 빌려 잠금장치를 해제해야 했죠. 화장실도 가고,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하여 수시로 자동문을 드나들고 싶은 아이들에게 자동문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0과 1 사이에 모든 것이 있는 디지털 세계

불편함을 참을 수 없었던 한 아이가 “0과 1!”을 되뇌며 자동문의 상하좌우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자동문에 설치된 센서를 찾아내어 그 위에 작은 색종이 한 장을 붙였습니다. 센서를 차단하니 자동문은 자동으로 닫히지 않았습니다. 유레카! 활짝 열린 문 앞에 선 아이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아이들은 코딩 언어를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프로그래밍을 학습하다 보니 오히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의 언어 개념을 더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금세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 것이 되었으니, 언제든지 필요한 순간에 꺼내어 활용할 수 있게 되었죠. 

퓨처랩은 장르/분야를 통달하는 지식기반 학습에서 탈피하여, 프로젝트 기반의 상황학습(Situated learning)을 설계하여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안에서 지식과 기능을 학습하고, 암묵적 지식을 갖는 것을 목표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Hands On, Minds On: 감각하는 것에는 때가 있다.

2019년 두 달간, 청소년들이 스타트업 대표가 되어 나만의 상품(굿즈)을 개발하여 유통/판매하는 전 과정을 체험하는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단, 네모난 박스 형태로 상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상품 기획과 개발 과정도 아니고, 투자사와 유통사(퓨처랩 스태프)을 설득하는 과정도 아니고, 하드보드지에 도형 전개도를 그려 네모난 박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말이죠! 

아이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 도형 전개도를 배웠지만, 머릿속에서 전개도를 펼치고, 전개도를 입체적인 구조로 만들 수는 없던 것이죠. 그동안 워크숍에 참여한 아이들을 떠올려 보니 그들에게 이와 유사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호기심쟁이인 퓨처랩의 작가, 작업자, 스태프들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학년에 따라 커터칼, 가위 등 날카로운 도구의 사용이 금지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이미 다 만들어진 전개도가 주어진 것이죠. 


도형 전개도를 직접 손으로 만들며 감각하는 힘을 키워요.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자를 때, 일정한 힘을 주어 (힘의 차이에 따라) 두세 번 칼질을 해야 깔끔하게 절단됩니다. 또한, 하드보드지를 접고 싶으면 절단할 때보다 약한 힘으로 칼질을 해야 하지요. 이런 것들은 말이나 글로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작업을 반복하며 감각을 익히며 배우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손으로 만드는 감각은 우리의 뇌가 도형을 구조화하고 입체화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학습능력에 비해 감각하는 힘은 어느 나이 이상이 되면 더 이상 개발하기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퓨처랩은 감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특정 시기에 아이들이 손과 몸의 감각을 재미있고, 다양하게 훈련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과 몸의 감각을 재미있게 훈련합니다.

아이들 스스로가 피평가자에서 평가자로!

퓨처랩이 말하는 창의성(Originality)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저마다의 자기다움을 회복하고 주체적인 ‘나’로 살아가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잣대나 기준으로 잘하고, 못 하고 구분하는 평가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내면의 힘을 길러 자기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자기만족과 고양을 기준으로 한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퓨처랩은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9살 막내도, 18살 형님도 스스로 정한 목표, 미지의 세계(Not Knowing)를 향한 호기심과 배움으로 성장하며 자신을 점검합니다. 평가는 언제나 민감한 부분이어서, 참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퓨처랩이 가진 평가에 대한 생각도 ‘맥락’과 ‘문화’ 안에서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퓨처랩의 탄생>을 연재하며 퓨처랩이 정의하는 창의성(Originality)과 꿈꾸는 방향을 돌아보며 글을 쓰다 보니, 처음의 마음과 배움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매달 엄청난 공부가 되는데요, 독자들은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다음 글은 퓨처랩을 구성하는 3가지 핵심 요소-공간, 콘텐츠(학습), 문화-의 마지막이자, 퓨처랩의 ‘꽃’인 문화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다음 글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뭐니뭐니해도 퓨처랩의 꽃은 문화

에필로그 

얼마 전,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퓨처랩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떤 내용의 드라마이길래 퓨처랩 배경이 필요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통해 자랑스러운(!) 퓨처랩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대본을 받아 보았습니다.

#공학도 물리 실험실과 예술가의 아뜰리에를 결합한 ‘고급스러운 공간’

대청소를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도구와 재료들이 널려 있는 퓨처랩을 고급스럽다고 표현해 주신 점은 감사했지만, 드라마 촬영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퓨처랩의 비전과 목표와는 달리,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또 하나의 사교육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초창기에는 아이가 퓨처랩에서 활동하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주는지 문의하는 부모님도 많았죠. 퓨처랩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포트폴리오를 제공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렇지만 오해는 마세요! 우리는 퓨처랩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이 자기만족과 고양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를 언제나 응원합니다. 😊 


글 | 오드리 (퓨처랩)


📌 [퓨처랩의 탄생] 시리즈 보기  


📌 [퓨:레터] 4호 다른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