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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랩의 탄생] 각자의 모양

2021-09-03

퓨처랩은 미래 세대를 위한 창의환경 조성과 청년 창작자 생태계 활성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아이들의 창의성(Originality)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데요. 오드리의 기획연재 <퓨처랩의 탄생>은 우리가 어떤 고민과 과정을 통해 창의환경의 3가지 핵심 요소인 공간, 콘텐츠(학습), 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소개합니다. 오늘은 콘텐츠(학습)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파일럿 연구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From Education to Learning!

퓨처랩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창의교육’입니다. 창의성의 사전적 정의가 ‘새롭고 남다른 것을 나타내는 성질’이라고 하니, 기존 교육 현장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던 아이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실험하는 퓨처랩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단어 같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교육’이라는 단어에 아쉬움이 남는 걸까요?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 기술, 인성, 체력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행위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행위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존재하고,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위계가 설정됩니다. 또한 교육은 수혜자(어린이와 청소년)가 아니라, 공급자(교사와 정책입안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학습자 개개인이 사라지고 학생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으로 대상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퓨처랩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기존 교육과는 다른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습자 개개인의 배움이 일어나고,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기 동력을 가질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개발할 때에도 교육자와 피교육자, 연장자와 연소자를 구분하지 않는 상호학습을 지향했습니다. 

2016년 퓨처랩은 <안전한 낮잠>, <생존의 기술>, <복제와 반복> 3가지 주제로 파일럿 연구를 진행하며 교육(Education) 환경에서 배움(Learning)의 회복이 일어나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청소년들과 함께 창의적 배움을 연구했다.   

Pilot 1. 안전한 낮잠: 비정형화된 놀이판을 통한 호기심 회복

파일럿 연구의 설계를 주도한 김태황 디렉터는 첫 번째 주제로 <안전한 낮잠>을 제안하며 한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업 중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학교에 다녀본 사람에게는 익숙한 장면인데, 불편한 쪽잠을 자는 아이들이 새삼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수업 중에 쪽잠을 자는 청소년들 (출처: 오마이뉴스)

자율적인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위해 비정형화된 놀이판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교실, 교과 수업, 시간표같이 규격화된 세상에서 벗어나면 호기심을 되찾고, 자기 안에 내재된 고유한 창의성(originality)을 발현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시작했죠. 

사운드해킹, 게임디자인, 커뮤니티아트, 광학(photo), 스토리텔링, 공간디자인 등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다양한 장르의 7개 워크숍을 준비했습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각 워크숍을 진행자들에게 사전에 주문한 내용은 동일했습니다.

“작가 스스로가 즐거워서 몰입했던 순간, 몰입했던 그 무엇으로부터 출발해 주세요.”


워크숍 진행자들은 모두 예술가입니다. 그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생산적인 공정이 아니라, 무모한 시도나 각종 실패의 경험을 통해 탄생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쓸모없는 것을 반복적으로 만들며 즐거웠던 기억, 나의 감각을 자극했던 순수한 끌림, 호기심의 회복을 통해 자기 동기를 찾는 것. 교실에 엎드려 몸도 마음도 불편한 쪽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쫓아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꿀잠. 그것이 <안전한 낮잠>의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3일 동안 기술과 예술을 넘나드는 놀이판을 진행하기로 하고, 12~16세 청소년 40명을 초대했습니다. 끝까지 지켜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워크숍이 시작된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일제히 강열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자기 몰입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엉뚱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작가들과 의도를 알 수 없는 무작위적 재료가 주어졌을 때,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새로운 발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안에 잠재되어 있던 창의성이 깨어나는 순간이었죠! 이로써 퓨처랩의 ‘모든 아이들은 이미 창의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첫번째 가설이자 실험의 대전제가 완벽히 증명되었습니다. 

Pilot 2. 생존의 기술: 타인과 사물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feat. 문제해결능력)

예측할 수 없는 미래, AI와 경쟁해야 하는 인간 등에 대한 공포를 자주 접합니다(그런데 AI와 겨루어 이기려면, 얼마나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야 할까요? 저는 자신이 없어요...). 퓨처랩은 AI와 지적 능력을 겨루기보다 우리의 우리다움(인간의 인간다움)에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파일럿 <생존의 기술>은 ‘공감 능력의 발현’에 주목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협업이 발생하고,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배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고민하며 5개의 워크숍을 준비했습니다. 

각 워크숍 안에서 2인 이상이 협력할 수 있도록 인원을 정하고, 참여자들에게 조별 과제처럼 정해진 틀로 협업을 주문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관찰할 수 있는 요소를 배치하거나 적극적인 소통이 있어야만 워크숍을 끌어나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각각의 워크숍을 상호 인식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아이들은 5일 동안 진행된 워크숍에서 타인의 말투, 행동, 생각들을 관찰하여 친구에게 가장 어울리는 비트를 창작하여 선물하기도 하고, 나와 친구, 가족의 일상의 불편함이나 필요를 관찰하여 딱 한가지 불편이나 필요를 해소하는 도구를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걸음걸이, 보폭, 유연성 정도를 관찰하여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기 어려운 레이저 트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편 환경 위기로 지구 멸망에 봉착하여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100년 후 융기한 섬에서 깨어나 언어와 문화를 모두 잃은 설정 아래,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해야만 했던 언어 창작 워크숍에도 즐겁게 참여했고요. 

 

자연스러운 협업과 소통의 실험을 설계하는 것은 아주 정교한 작업이었지만, 세밀하게 설계된 워크숍을 통해 공감 능력은, 교강사의 구체적인 주문에 따른 공동 작업이 아니라, 타인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관찰/발견/예측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타인과 사물을 관찰하다 보면, 우연한 발견을 하기도 하고, 시야가 더 확장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여 자기 안에 데이터가 쌓이면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 사물이나 사회의 변화를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공감 능력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관찰을 통해 타인과 사회, 일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들의 불편과 필요를 이해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내놓는 것만이 문제해결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단언컨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근력이 튼튼해집니다.   

Pilot 3. 복제와 반복: 자발적 창조로의 초대

호기심 자극을 통한 개인의 몰입과 창의성의 발현을 실험한 첫 번째 파일럿 <안전한 낮잠>과 공감 능력이 배가될 수 있는 환경과 콘텐츠를 실험한 두 번째 파일럿 <생존의 기술>에 이어, 세 번째 파일럿 <복제와 반복>은 자발성에 대한 실험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원리들이 지루한 복제와 반복의 실험을 통해 체화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3일 혹은 5일 연속으로 진행된 기존의 1, 2차 파일럿과 달리, 3차 파일럿은 5주간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정기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토요일에는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수요일에는 지난 작업에 이어 자기 프로젝트를 스스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계획하고 활용해본 경험이 부족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5주의 기간 중 4주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기획단은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며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했지만, 초조한 마음에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 갔습니다. 이번 실험이 설계부터 잘못된 것은 아닌지 매주 처절한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졌죠. 

그렇게 4주라는 시간이 흐른 뒤, 일부 아이들은 드디어 수요일을 온전히 자기 시간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수요일에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뿜으며 자발적으로 자기 작업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기 시간의 주인이 아닌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간의 주체가 되어 본 경험이 없으니 충분한 자기 시간이 주어져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수동적 자세로 가이드를 요청했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신묘한 힘을 갖고 있어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단 4주 만에 자기 시간의 주인, 아니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퓨처랩의 실험은 계속됩니다.

퓨처랩은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순수한 호기심, 이끌림에서 출발하여 각자의 모양(originality)대로 배움의 달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좇느라 숨이 턱까지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그리며 즐기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다면이 고루 발달한 건강한 친구들로 성장하기를 응원하며 퓨처랩은 실험을 계속하여 고도화하고, 우리의 경험과 성찰을 다른 곳에 나누며 확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실험이 성공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설이 유효한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새로운 가설을 다시 세우기도 하죠. 때로는 최초의 목적과 다르게 아주 엉뚱한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데요. 퓨처랩의 우여곡절, 우당탕탕 실험 여정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지하는 교육자, 부모님, 정책입안자들에게 전달되어 위로와 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미래세대의 행복한 삶을 위한 퓨처랩의 실험은 계속됩니다. 

에필로그 

퓨처랩에는 흥미로운 대화법이 있습니다. 질문은 질문으로 답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끝이 없는 질문의 향연, 업데이트를 위한 업데이트를 위한 업데이트! 질문으로 가득 찬 영겁의 소용돌이랄까요? 퓨처랩의 영업비밀(!)이 바로 이 ‘질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워크숍을 이끄는 작가에게 절대로 일 단위, 시간 단위로 촘촘하게 짜인 커리큘럼을 준비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대신 퓨처랩이 작가들에게 질문하고, 작가들이 다시 아이들에게 질문 던지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퓨처랩의 좋은 질문은 언제나 아이들의 자기다움을 바탕으로 한 좋은 대답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좋은 질문을 만들어 내기 위한 질문의 업데이트를 위한 업데이트를 위한 업데이트는 계속됩니다.😊

글 | 오드리 (퓨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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