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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랩의 탄생] 나를 꺼내도 좋은 공간

2021-07-30

스마일게이트 퓨처랩은 미래 세대를 위한 창의환경 조성과 청년 창작자 생태계 활성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6년 퓨처랩은 스마일게이트 사옥 한 켠에 자리잡은 텅 빈 200여평의 공간에서 작은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점유하고 자신만의 즐거운 탐구를 시작할 수 있을까? 지난 5년 간 어떤 고민과 경험을 거쳐 퓨처랩의 공간, 콘텐츠 그리고 문화가 탄생되었는지 <퓨처랩의 탄생>이라는 연재를 통해 소개합니다. 

퓨처랩 공간을 여는 열쇠, 등장인물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창의적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예술성[창의성]을 간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유명한 메시지입니다. 퓨처랩의 힘은 입장과 동시에 탄성이 나올 만큼 멋진 디자인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은 이미 창의적’이라는 믿음, 그리고 ‘아이들을 신뢰함으로써 존중하는 태도와 문화’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퓨처랩 공간의 철학은 물론 실제적 쓰임새 또한, 이 공간의 주인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년간의 파일럿 워크숍을 통해 퓨처랩에서의 공간 실험을 주도한 홍서희 작가가 그 실험의 끝자락에 공유한 퓨처랩의 평면도입니다. 복잡한 건축 설계도를 기대했는데, 홍서희 작가는 실망스럽게도(?) 검은 4절지 한 장을 내밀더니 ‘등장인물’이란 글씨가 인쇄된 투명 필름을 올려놓았습니다.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모두의 탄성이 터졌습니다. 


홍서희 작가가 설계한 퓨처랩 평면도

아..! 이 공간의 주인공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연스러운 등장!! 그렇다면 등장과 동시에 친구들 눈을 가득 채울 풍경은? 


자연스러운 등장을 유도하는 퓨처랩 입구

사선으로 디자인된 퓨처랩 출입구 동선은 낯선 곳으로의 첫 걸음이 어색할 혹은, 그냥 쑥스러운 10대의 등장인물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망설임 없이 입장할 수 있도록 한 배려입니다. 종종 스마일게이트 캠퍼스 B1을 걷는 외부인들이 복도를 거닐다가 자연스럽게 퓨처랩으로 들어온 후, “어? 어머!” 하곤 후다닥 돌아서는 에피소드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의도가 잘 작동하나 봅니다.😊

등장과 동시에 공간을 구분하는 낮은 계단 너머로 퓨처랩 전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곳을 찾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빠르게 퓨처랩의 공간과 그 속의 사람을 둘러보며 이 곳의 무드를 읽어 냅니다. 나름의 컨셉과 필요에 따라 공간 요소가 구분되지만, 시야를 가리지 않고 큰 공간을 제법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이 곳에 입장한 아이들은 부담없이 등장하고 동시에 스스로 공간 탐색을 마치고 퓨처랩으로 스르륵 스며 듭니다. 

자연스러운 협업의 시작, 철물점과 샘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철물점

간혹 퓨처랩의 철물점을 보고 ‘메이커 스페이스’란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메이킹을 할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메이커 스페이스가 갖추고 있는 3D프린터나 레이저 커터, CNC와 같은 공구들은 이 곳 철물점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델링을 통해 근사한 결과물을 내는 것 이전에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와 관심을 발견해 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퓨처랩의 철물점에는 각종 크기의 망치와 톱, 드릴, 타카, 트리머, 대패, 뺀치, 니퍼, 함석가위, 우마, 톱다이, 직소, 집진기…...!!까지 어린이, 청소년에게 허락되지 않은 미지의 공구와 모든 공구의 마스터인 ‘사장님’이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존재합니다. (철물점 사장님의 본업은 조형예술 작가지만, 아이들은 진짜 철물점 사장님 인줄 알고 있답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친구의 작업을 옆에서 도와주거나, 뚜렷한 목적지 없이 도구나 재료를 탐색해 보는 시간 또한 숨어있는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발견하고, 나아가서는 재능과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허기를 달래려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주방 

철물점 맞은 편에는 아이들이 간식과 물을 찾아 자주 모여드는 주방(일명 ‘샘’이라고도 부릅니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각종 공구를 찾아, 손을 씻거나 허기를 달래줄 먹거리를 찾아 온 아이들이 모여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뜻밖의 기발한 협업이 일어납니다. 퓨처랩 런칭 초기에는 모든 참여자에게 공지해야 할 내용이 종종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운영 스텝들이 하나같이 작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나무 작업을 하던 친구들이 보다 못해 세울 수 있는 안내판을 만들어 주었고, 스피커 작업을 하던 친구들과 협업하여 마이크와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한 스피커를 안내판에 달아주었습니다. 어느새 드로잉 작업을 하던 친구들이 다가와 그림을 그리더니 두 개의 스피커가 팬더의 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 모바일폰을 놓을 수 있는 거치대가 설치되어 모두가 블루투스로 음악도 즐기고 공지도 안내받게 되었습니다. 팬더 스피커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통과한 듯한 세련된 결과물은 아니지만, 타인의 필요를 살피는 공감능력과 문제해결능력, 게다가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UX 디자인까지. 그야말로 아이들의 협업이 이뤄낸 ‘창의적’ 결과물입니다. 샘에서 사담을 나누며 시작되어, 샘을 마주한 철물점을 통과하며 구현된 팬더 스피커. 작업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수년이 지나도록 퓨처랩을 방문하며 기한 없는 A/S를 선물하고 있답니다.😊 



아이들의 창의성과 협업으로 탄생한 팬더 스피커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비효율의 공간



 

학교와 가정 등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공간이 딱 떨어진 네모로 수평적으로 분할되어 있고, 이는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과 공간 활용에 최적화된 구성일 것입니다. 그에 비해, 퓨처랩에 있는 다양한 높이의 계단과 무대, 다락은 편편한 네모였던 공간에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변주를 줍니다. 반듯한 공간에 비해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덕분에 엉뚱하고 재미있는 딴 짓(!)이 주는 우연한 발견과 배움이 일어나곤 합니다.

 퓨처랩 중앙의 샘 위에는 작은 다락이 있습니다. 다락에서 아이들은 기타를 치기도 하고, 노트북을 들고 자기작업에 몰두하기도 하는데요. 문제는 무엇이든 열심히 재미있게 하다 보니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기 귀찮았던 친구들은 교과서에서 글로만 배웠던 도르래를 실제로 설치하기 시작합니다. 수차례 실패 끝에 우유박스를 매단 도르래를 설치하고, 간식이 다락으로 성공적으로 배달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감동의 순간입니다. 다락 아래와 위에서 실험을 숨죽여 보던 아이들은 올림픽 우승자가 된 듯 즐거운 함성을 지릅니다. :)

“도르래 실제로 처음봐요!” 도르래 갯수를 추가할수록 무게가 분산되어 가벼워지는 원리를 처음 직접 경험한 친구들, 이들의 배움은 삶과 동떨어진 지식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경험한 친구들의 삶의 지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도르래 간식 배달

비밀의 방 (스포주의!)

퓨처랩이 자리한 공간의 최초 모습은 이 건물의 구내식당이었습니다. 실제 구내식당으로 사용되진 않았지만 주방과 배식대, 식당의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2016년 파일럿 실험을 할 때였어요. 주방 안쪽에 개구멍 같은 작은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으로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곧 10명 가까운 친구들이 그 구멍안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문의 크기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에는 굉장히 좁은 공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을 따라 들어가보니 식자재를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창고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 방을 발견한 순간부터 아이들은 그 곳을 작업실로 삼아 놀기 시작했습니다. 레이저 트랩을 설치하거나, 영상 작업, 암실이 필요한 광학 작업까지. 비밀의 방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다양한 작업으로 물꼬를 틔어 주었습니다. 파일럿 워크숍 이후 지금 퓨처랩 공간을 설계할 때, 이 곳은 비밀의 방 컨셉에 더욱 충실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퓨처랩에 오면 비밀의 방을 찾아 보세요!  

지금까지도 비밀의 방은 아이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비밀의 방에서 치뤄진 ‘꽃을 위한 장례식’입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중학교 2학년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삐딱한 자세와 길게 늘어진 앞머리.. 만사가 귀찮은 듯한 몸짓. “사람들이 보통 꽃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왜 꽃이 아름다운지 생각해봤니?”란 질문과 사춘기 친구들에게 한아름에 꽃이 안겨졌습니다. 친구들은 꽃잎을 따고, 줄기를 열어 보기도 하며 다양하게 꽃을 분해하고, 꽃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하며 심드렁한 얼굴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탐구하였습니다.

‘저 친구들 이제 안 올 것 같아… 사춘기 친구에게 꽃이 왜 아름답냐는 질문이 가당키나 한가…!!’

제 불안과는 달리 심드렁한 얼굴로 수 주에 걸쳐 꽃을 뜯던 친구들이 저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초대장> 꽃을 위한 장례식, 비밀의 방으로 오세요.  


꽃을 위한 장례식

비밀의 방에는 꽃을 위한 제단이 있었고, 엄숙한 분위기로 장례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짝다리의 심드렁한 얼굴로 시를 낭송합니다. 

“꽃아, 네가 아름다운 이유는 네 삶에 끝이 있기 때문이야.”

비밀의 방이 주는 공간적 무드는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시를 낭송해도 부끄럽지 않으며, 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욕망을 꿈틀거리게 합니다. 중학교 2학년, 15살의 나이의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인생의 깨달음을 알게 된 친구들. 아이들 속에는 상상 못할 보석이 숨어 있습니다.

 





5년의 시간만큼 성장한 ‘공간’에는 여전히 여러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처음 이 곳에 등장했던 친구들은 어느새 스무 살 성인이 되어 능글능글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이제 갓 9살이 된 새 친구들은 사선의 출입구를 통과하여 이 곳과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합니다. 틴즈 크루(Crew) 친구들은 방학을 맞이해 퓨처랩의 직원인양 매일 출근하듯 이곳에 등장하지요.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산길 같이, 이 친구들이 발을 내딛는 새로운 동선에 여러 걸음이 더해지면서 어느새 새 길이 생깁니다. 모두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친구들의 등장 자체가 퓨처랩의 공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검은 4절지 도화지 위해 투명한 ‘등장인물’ 필름이 이 공간의 컨셉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말이죠.

지난 5년 간 성장해 오며 퓨처랩 공간이 품고 있는 감동이 이 글을 통해 충분히 전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곳에서 구독자 여러분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못다한 퓨처랩 공간의 이야기는 함께 공간을 걸으며 더 풍성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2주가 넘는 굉장한 계획을 갖고 퓨처랩 대청소를 했습니다. 개소 이래 이렇게 깨끗한 퓨처랩이 있었던가! 우리의 노고를 셀프로 치하하며, 보람을 느끼는 것도 잠시, 오랜만에 랩실을 찾은 L작가의 순수한 물음이 돌이 되어 날아옵니다.

“퓨처랩은 청소는 도대체 언제 해요?”

‘대’청소를 했지만, 청소가 안된 것 같은 퓨처랩은 사실 고도로 계산된 저희의 의도라면… 모두 놀라실까요?


2017년 5월 13일, 퓨처랩의 공식 개소일. 류재훈 작가

사실 아이들이 벽에 낙서 하나 할 수 없는 세련되고 매끈한 공간이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깨끗하고 반짝이는 새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퓨처랩은 아직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새 하얀 벽에 의도가 있는 멋진 그림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손 가는 대로 강렬한 물감을 바르며 아이들을 초대하였습니다.

퓨처랩이 처음 문을 열던 날 찾아온 40명의 아이들은 자유와 환희를 느끼며, 이 곳을 진짜 자신들의 공간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잘 그린 그림도, 못 그린 그림도 없습니다. 그저 아이들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표현들이 더해지며, 진짜 퓨처랩의 공간 디자인이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글 | 오드리 (퓨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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