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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랩의 탄생] 팔레트 300개의 실험
2021-07-05
방과 후, 주말이면 대한민국 IT 산업의 중심, 고층의 유리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판교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풍경이 벌어집니다. 사원증을 목에 건 개발자들 사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눈에 띕니다. 친구들의 목적지는 판교로 344번지, 스마일게이트 캠퍼스 빌딩에 조성된 200여평 규모의 아동/청소년을 위한 창의환경 “Future Lab” 입니다.
창의성의 발현되는 환경, 첫 번째 이야기: 공간
퓨처랩은 “모든 아이들은 창의적이다.”라는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린이를 향한 이 믿음은, 이미 각자의 모양(Originality)으로 아이들에게 내재된 창의성을 어떻게 하면 드러내고 성장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창의성이라고 하면 마치 스티브 잡스🍎와 같이 세상이 놀랄 혁신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혹시 생각하고 있나요? 퓨처랩은 이러한 사회적 오해에서 벗어나, 아동청소년 모두가 고유하게 이미 지니고 있는 창의성이 발현되는 환경을 탐구하고, 세상과 공유하고자 2016년 1년 간의 파일럿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혹시 창의성이 샘솟는 공간을 구성하는 비법 같은 내용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해요! 사실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퓨처랩의 실험 목적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가 저희의 고민이었으니까요 🙂
지금과 같이 퓨처랩의 공간이 디자인되기 전, 백색의 200평 빈 상자 와도 같았던 아무것도 없는 퓨처랩에서 공간 실험을 위해 제안된 것은 "팔레트 300개와 플라스틱 우유박스 80개”였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전문가 7그룹을 초청한 첫번째 파일럿. 실험적인 시도를 즐겨하는 이들에게 조차 팔레트는 환영받는 제안은 아니었습니다. 워크숍(교육)에는 책상과 의자 정도는 필수인데, 기본적인 가구조차 팔레트와 우유박스를 케이블 타이로 엮어 직접 만들라니요? 이 낯선 상황을 마주하며, 실험을 주도하는 우리조차 내려놓지 못한 수많은 선입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 상황이 낯설고, 불편한 것은 어른들 뿐이었어요. 정작 아이들은 자기 공간의 쓰임을 상상하며 스스로 공간을 구성하고, 빠르게 퓨처랩의 주인이 되었답니다.
파일럿을 진행하며 저희의 배움은 ‘원래 알고 있었던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 것(심증에서 확신으로!)’,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것(기대하지 않았던 우연한 배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는데요. 특별히 공간에 대해 확신하게 되고, 새롭게 알게 된 것 3가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공간 요소 1: 무작위적 재료 + 쓸모를 모를 도구
1차 파일럿 실험을 설계하며 함께할 작가들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환경”을 논의할 때 공통적인 키워드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용도와 쓰임이 명확하지 않은 다양한 재료와 도구, 그리고 손으로 감각하는 작업.
요즘은 교육도 잘 정리된 서비스 같아서 각 교육 목표에 맞는 키트화된 커리큘럼이 잘 발달해 있습니다. 다만, 키트화된 커리큘럼의 아쉬움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된 재료와 가이드를 통해 학습자 모두 비슷한 결과물에 도달한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모두 다른 모양의 생각과 상상을 할 능력을 갖고 있지만, 발휘할 기회가 없는 것은 큰 아쉬움입니다.
쓸모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재료들이 주어질 때 아이들이 펼치는 상상의 폭은 교수자가 설계한 것을 넘어섭니다.
1차 파일럿, 7개의 워크숍에서 제안한 낯선 도구와 재료들은 아이들을 순식간에 자기 작업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간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위험해 보이는(!) 낯선 도구를 탐색하고 사용해보기 위해 의미 없는 톱질을 하다 영감을 얻기도 하고, 우연한 결과물로 발전되는 작업에서 더욱 흥미와 성취를 느낍니다. 쓸모와 용도를 모를 도구와 재료들은, 파일럿 시작 30분 안에 아이들에게 굉장한 몰입 에너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자기동기와 몰입, 그리고 고유함(Originality)에서 나오는 창의성 발현이 시작되었습니다!
공간 요소 2: (훔쳐!)보고,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느슨함
설계한 실험들이 참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1차 파일럿 실험 후, 동시에 진행된 7개의 워크숍의 참여자 7명을 초청하여 FGI를 진행하였습니다. 실험의 의도를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파일럿이 진행되는 전 기간 각 워크숍의 기획의도, 워크숍의 이름조차 참여자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FGI에 참여한 7명의 아이들은 본인이 소속된 워크숍의 기획의도는 물론, 다른 6개의 워크숍의 기획의도까지 아주 명확하게 구두로 설명하는 것 아니겠어요?
오픈된 공간에서 팔레트 사용은 방음과 분리가 되지 않아 참여자를 산만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팔레트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와 보이는 풍경들을 통해 서로를 관찰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자기 관심을 찾아 자연스레 다른 워크숍으로 이동하기도, 내 워크숍과 타 워크숍을 연결, 융합하여 생각과 작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공간 요소 3: 자연스러운 만남과 협업을 유도하는 동선 - 간식 창고의 마법!
1년 간의 파일럿동안 공간에서 가장 유의 깊게 살펴본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동선이었습니다. 팔레트로 길을 만들거나, 높은 구조물을 만들어 보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구조를 변경하며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동선을 살폈습니다. 수많은 동선이 발생하지만 가장 재미있고, 의미 있는, 또 빈번한 동선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간식창고로 향하는 걸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간식창고로 몰려들었고, 오늘 처음만난 친구들도 음식을 함께 먹으며 자기 워크숍을 소개하고, 초대하기도 하며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1년간의 파일럿 동안 간식창고(바퀴를 달은 냉장고!)를 이리저리 옮기며, 물이 있는 개수 시설과, 도구의 방, 간식 창고가 만났을 때 아이들의 동선 중복이 가장 많이 발생했고, 교수가자 설계한 의도된 협업이 아닌, 아이들끼리 의견을 교류하며 자기 관심에 기반한 의미 있는 협업의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좌) 아이들이 함께 만든 간식 메뉴판 (우) 제롬 작가와 함께한 파일럿 워크숍
퓨처랩이 생각하는 창의성은 결국 나 혼자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통한 창조가 아니라, 나 바깥의 세상과 사물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필요나 이슈를 발견하고, 또 이것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사회적 창의성’ 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을 연결해주는 공간의 역할은 무척 의미있는 발견이었습니다.
물론 이 3가지 요소 외에도 퓨처랩이 실험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된 것들,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은 그 외에도 무수했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을 정리하고, 적용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5년의 시간, 9,000여명의 아이들이 성장시켜 온 공간
퓨처랩의 공간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실험을 설계하고 관찰하며, 그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감각과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공간을 디자인한 진짜 주인공은 2016년 1년의 파일럿을 함께했던 120명의 청소년들입니다. 120명의 친구들이 스스로 이 공간의 주인이 되어 만들어낸 재미와 에너지, 역동이 2017년 5월, 지금의 모양으로 탄생한 것이죠. 그리고 지난 5년간 퓨처랩을 거쳐간 9,000여 명의 친구들의 경험이 우리의 공간을 계속 성장시켜 왔습니다.
8월에 찾아 올 퓨:레터 2호에서는 지난 5년동안 퓨처랩 공간이 어떤 역동을 만들어 냈는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조금 더 소개해 드릴게요! 우리의 배움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 교육자, 또 교육 정책 입안자들에게 닿아,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 파일럿 프로그램 (1차) 사진 더 보기
🖼 파일럿 프로그램 (2차) 사진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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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처랩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스마일게이트가 미래세대의 행복을 위해 100% 출연하여 개소한 창의∙창작 환경 연구소입니다. 2012년 청년 인디게임 창작자 지원을 시작으로 10여년이 넘는 긴 시간 진정성을 갖고 다음세대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2017년에서 보내온 편지
화려하고 편리한, 최첨단을 두른 멋진 가구와 기기로 이 공간을 채울 수도 있었지만, 저희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이 공간의 진짜 주인인 우리 아이들이 상상하며 그 쓰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의 선택이었죠.
조금은 불편하지만, 이 투박한 팔레트에서 Future Lab은 시작되었습니다.
케이블 타이 하나만 있으면, 팔레트들은 책상과 의자가 되고, 가상의 나라인 섬을 만들기도. 혹은 아이들만의 비밀 기지.
골목길과 같은 미로가 탄생하였습니다.
팔레트 사이로 난 구멍으로 아이들은 서로를 살피고 공감하였으며, 스스로 설계한 자기 공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팔레트를 통해 배운 모든 것들을 이 공간에 담아 내었습니다. 멋지고 화려해 보이는 이 공간-Future Lab은 여전히 팔레트의 정신과 철학이 가득합니다.
언제까지나 Future Lab의 주인은 우리 아이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7년 5월, Future Lab 드림-
글: 오드리 (퓨처랩 창의·창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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