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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환경 조성] 무제한, 무계획의 8시간

2021-07-05

 


얼마 전 스마일게이트 캠퍼스 로비 공간이 새단장을 마쳤습니다. 바로 퓨처랩의 공간 디렉팅을 맡은 홍서희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했는데요, 덕분에 잠시 머물다 가면 기분 좋은 전환을 선사하는 퓨처랩의 무드가 수 많은 임직원들이 머물다가는 이 곳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새 단장을 마친 "모두의 로비"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창의 워크숍을 진행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5월 마지막 주말, 퓨처랩은 류재훈(a.k.a.제롬) 작가와 함께하는 무지(無知)하게 크기 그리기 워크숍을 통해 아직 새집 냄새나는 이 공간을 거대한 캔버스로 바꾸면서 창의적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틀 간 6명의 부모님과 7명의 아이들이 함께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작가에 영감을 받은 무지하게 크게 자르기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작가에 영감을 받은 무지하게 크게 그리기를 진행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텅 비어있는 공간


퓨처랩이 제공한 것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약간의 영감이 되어줄 예술가 레퍼런스, 그리고 오롯이 자기 방식대로 작업할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첫 날, 커다란 천과 종이를 무지하게 크게 오리며 텅 빈 바닥을 자유롭게 채워갔습니다. 누군가 나의 조각 위에 다른 조각을 올려놓아도 치우지 않고 공동 작업을 이어가자는 단 한 가지 약속만 있었습니다. 둘째 날, 이번에는 각종 일상의 재료로 DIY 대형 붓을 만들었습니다. 나무 막대 끝에 롤러나 페인트 붓, 심지어 헤진 봉제인형을 매달아 묶기도 하고, 또 빨대를 한 움큼 묶어 빗자루처럼 생긴 붓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게 붓이 될까?' 싶었던 PVC 파이프에 플라스틱 해라까지 사용해 아이들은 부모님을 조수 삼아 주저 없이 사용해 정말 독특한 붓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정말 자유시간! 대형 페인트 통이 색깔 별로 준비되었고, 정말 자유롭게 바닥 위를 활보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속이 뻥 뚤리는 이 신나는 자유가 어떤 친구들에게는 한편의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무엇인가를 만들 생각이나 시간이 사라졌었어요. [무지한 채로] 붓을 만들어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다시금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게 되었어요.”

"무엇을 경험했어요?" ".... 잘 모르겠어요."


무지(無知), 우리 삶에서 필요한 빈 칸

무지하게 크게 그리는 중!


저는 늘 배움에서 '빈 칸, 쉼, 공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는 어느 작가님께서 주창한 '생략교육'이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책을 써보겠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략교육'이 지향하는 바와는 반대되는 행동이어서 실행은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어쨌건, 우리 삶에서 이러한 빈 칸을 만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롬 작가는 이틀 간 무던히 부모-자녀 관계를 떠나 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마음이 느끼는 것에 주목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무지를 권했습니다. 남의 시선에 대한 무지, 생각과 판단에 대한 무지, 고정 관념에 대한 무지 등 무지한 상태를 기반으로 마음이 또는 몸이 흐르는 대로 예술 작업에 참여하도록 말이죠.


     

직접 만든 대형 붓을 들고 무지하기 크기 그리며 신나게 활보하는 아이들

처음에는 난감해 하고 어려워 하는 참여자들이 있었지만, 무지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이며 어느 순간 몰입의 순간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필요한 무지(無知)

작년 겨울, 소소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작년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부모로서 아이에 대해 잘 파악하고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제때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저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녀와 부모 사이는 완전히 새롭게 형성된 관계이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워크숍이라는 시간을 빌어, 가족이 함께 따로 또 같이 작업하며 평소와는 조금 다른 낯선 공기를 마시고, 조금 다른 간격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던 이 시간이 저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색다른 환경에서 함께 작업하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제 자녀가 만들기와 그리기를 좋아하고 다양한 예술 교육을 받고 있어 창의성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유로운 공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를 보고 부모로서 내가 아이를 제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 자녀 교육과 양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무지하게 큰 캔버스 안에서 자유롭게 마음껏 표현하는 아이를 보며 그간 아이에게 못하게만 했던 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와 달리 마음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저를 보면서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에필로그: 퓨처랩과 부모 사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아이와 아빠

퓨처랩의 대부분의 워크숍은 9~16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의 부모님께서 퓨처랩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늘 궁금해 하십니다. 하지만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이 가장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퓨처랩은 워크숍 중에는 '부모님 출입 금지' 정책을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를 통해 한 발치 떨어져 퓨처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시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과정과 경험을 겪게 되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번 워크숍을 통해 부모님들이 직접 퓨처랩 방식의 작업 행위에 동참하게 되면서 퓨처랩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자녀들을 만나고 있는지 경험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뻔할 수 있겠지만, 무지하게 크게 그리기를 통해 우리의 무지함을 깨닫고 '백문불여일견, 백견불여일각, 백각불여일행'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생각해보는 게 낫고, 백번 생각해보는 것보다 한번 실천해보는 것이 낫다)의 성어가 부모와 아이 사이, 퓨처랩과 부모 사이의 관계에 모두 해당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뻔한 결론이지만, 앞으로 퓨처랩이 꾸준히 새로운 영감과 공백의 순간을 제공하며 아이들 뿐 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가기 위해 계속 애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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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소소 (퓨처랩 창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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