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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환경 조성] 놀이하듯, 기술과 예술 사이 유영하기
퓨처랩은 아동·청소년들이 창의성을 키우고 자기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창의환경이 보다 많은 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퓨처랩의 철학과 가치를 교육자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8월 5일 개최한 온라인 포럼 <SW교육은 어떻게 창의학습으로 전환되는가? 두번째 이야기>의 요약리포트를 전합니다.
퓨처랩은 지난 4월, 교육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온라인 컨퍼런스 <SW교육은 어떻게 창의학습으로 전환되는가?>를 개최했습니다(요약리포트). 기조 발제를 맡은 MIT 미디어랩 미첼 레스닉 교수는 창의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자 스스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라! 그리고 배움의 달인이 되라!”고 제안했습니다. 아이들이 겪는 배움의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성찰해보는 것만큼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이해하는 방법도 없을 테니까요.
8월 개최한 <SW교육은 어떻게 창의학습으로 전환되는가? 두번째 이야기 - 기술, 예술 그리고 놀이 사이>는 교육자들에게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영감을 전하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드로잉, 글쓰기 작업을 하는 예술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태윤 작가를 연사로 초청했습니다.
그가 준비한 강의 제목은 ‘숫자-코드-시-이끼: 마법 같은 수의 세계’. 강의는 지난 10년 동안 뉴욕 시적연산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한 경험, 현재 관심 있는 주제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는 포럼에 참석한 100여 명의 교육자에게 어떤 영감을 전해 주었을까요?
자신의 비밀의 숲에 우리를 초대하는 최태윤 작가 (사진 출처: 라야)
놀이하듯, 기술과 예술 사이 유영하기
2013년 최태윤 작가와 동료 예술가들은 미국 뉴욕에 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를 설립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학교는 일 년에 두 번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예술을 탐구하는 10주 과정 수업을 열고, 가을과 겨울에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학교에는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입학하는데요. 그런데, ‘시적 연산(Poetic Computation)’이 무슨 뜻이냐구요? 작가는 두 가지 답변을 합니다.
“컴퓨터 기호 체계인 코드(code)를 활용하여 시적인, 은유적인 표현(execution)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코드 그 자체에 시적 매력이 있음을 뜻하기도 하죠. 문법(syntax)이 아름다운 경우도 있고, 코딩하는 사람의 철학, 사고방식, 또는 세계관이 담겨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으로 전자 회로를 만드는 핸드메이드 컴퓨터 수업 (사진 출처: Naoki Takehisa, Courtesy of 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 [YCAM])
최태윤 작가는 자신이 진행한 수업과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핸드메이드 컴퓨터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손으로 전자 회로를 만들게 합니다. 기판에 트랜지스터와 전선을 연결하고, 직접 인두질도 하고요. 처음에는 단순한 회로를 만들지만, 나중에는 훨씬 복잡한 8비트 컴퓨터, RAM(Random Access Memory)도 만든다고 합니다. 왜 이런 작업을 할까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아두이노(Arduino)와 같은 마이크로프로세서만 해도 추상화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학생들은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보며 전자 회로, 8비트 컴퓨터, RAM를 작동 원리를 깨닫게 되죠.
핸드메이드 컴퓨터. 손으로 만들며 작동원리를 배운다. (사진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학생들은 이런 수업을 받고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작품을 만듭니다. “화려한 미디어아트 작품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충분히 예술적 가치가 있습니다. 작품에 필요한 코드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놀이의 규칙은 단 하나, 커뮤니티를 존중하기
동료 예술가이자 시적연산학교 공동설립자인 잭 리버만(Zach Lieberman)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만든 <SFPC Re-coded>는 역사적인 미디어아트를 현대시대의 기술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입니다. 미디어아트의 역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주로 백인남성 작가들 위주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고, 여성, 유색인종 작가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리버만과 학생들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방식으로 새롭게 코딩했습니다. 또한 전시장에서는 대형스크린 왼쪽에 코드로 생성된 패턴의 움직임을, 오른쪽에 관련 슈도코드(pseudocode)를 보여주었는데요. 그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작품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많은 대화가 촉발되기를 기대하며, 자연어와 유사한 슈도코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역사 속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 SFPC Re-coded (사진 출처: 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올해 초 최태윤 작가를 비롯한 시적연산학교의 기존 운영진은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현재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등이 중심이 된 2세대 운영진(SFPC Stewards)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존중하며 보다 실천적인 단체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태윤 작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컴퓨터 공학자이자 미디어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동료 나빌 하세인(Nabil Hassein)의 강연 <컴퓨팅, 기후변화 그리고 우리 모두의 관계들(Computing, Climate Change, and All Our Relationships)>을 인용하며 1부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관계를 고쳐야 한다(repair).” 하세인은 왜 테크 기업들이 많이 사용하는 ‘develop(개발하다)’, ‘create(창조하다)’, ‘innovate(혁신하다)’가 아니라 ‘repair(고치다)’라는 동사를 사용했을까요? 개인과 기업, 사회는 어느 한순간 바뀌지 않습니다. 조금씩 변화할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해야 합니다.
Control에서 Care로 전환
최근 미국에서 한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최태윤 작가는 이끼를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이끼뿐만 아니라 지의류와 버섯에도 푹 빠져 있는데요.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기술과 시스템의 관계, 생명과 비생명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 주제와 연결됩니다. 예를 들면 균과 조류의 공생체인 지의류를 통해 생명과 비생명의 협력을 배울 수 있죠.
숲, 귀신, 사람, 고양이, 나무… 최근 관심을 표현한 그림 @최태윤 (사진 출처: 이경준)
이런 관심은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는 오래전 자신이 그린 그림 뒷면에 벌레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동안에 그림과 자연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공-산(共-産, sym-poiesis)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페미니스트 기술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공-산’이란 ‘함께 생산하다’라는 뜻으로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만들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도나 해러웨이는 우리에게 지의류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은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연약한 존재도 아니고, 정복해야 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고 하죠. 저는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최태윤 작가는 앞으로 자연과 인간, 기술과 시스템, 생명과 비생명의 관계를 추측하고 상상하고 질문하는 ‘시적인 중개자(poetic agency)’로서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예를 들면 분산화된 피어 투 피어(Peer to Peer) 네트워크에 가상의 정원을 만들고 이끼를 키우는 것이죠!
작가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control(통제하다)에서 care(돌보다, 관심을 갖다)로 나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control은 중요한 단어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건 서로 관심을 갖고 돌보는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 기계, 자연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친절히 대해야 한다고 작가는 제안합니다.
돌봄, 통제를 넘어 @최태윤 (사진 출처: 최태윤)
SW교육은 어떻게 창의학습으로 전환되는가?
우리 사회가 타자와 공존하는 사려 깊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기술과 예술 경계를 넘나들며 탐구와 실험을 지속하는 최태윤 작가의 강연. 열띤 현장 분위기가 전해졌나요? 포럼에 참석한 교육자들은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술만을, 예술만을 바라보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공산(sym-poiesis)의 눈으로 기술과 예술, 인간적인 요소와 비인간적인 요소, 세상을 아우르자는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껏 작업해 오신 것들에 대한 담백하고 솔직한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사유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이끼와의 협업이 ‘나는 OO과(도) 협업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 집니다.”
“학교와 사교육 현장의 소프트웨어교육이 기능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SW교육이 보편적 교육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자들이 기능에 매몰되지 않고 즐기는 문화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을 강조해 주셔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SW교육은 어떻게 창의학습으로 전환되는가?’ 퓨처랩이 교육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에 접근할 때 창의적 배움이 일어나는지, 이런 창의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서로 고민을 나누고 함께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퓨처랩의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응원해 주세요!
글 | 그림 (퓨처랩 창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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